피타고라스적 삶의 방식에 특징적인 규칙으로는 종교의식이나 음식과 관련된 것 말고도 흥미로운 것들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친구들의 것들은 공동의 것'이라는 규칙, 즉 재산 공유의 규칙이 있었고, 또한 자기 통제라는 도덕적 훈련을 위한 묵언의 규칙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소크라테스는 대중 연설을 중시하던 기원전 4세기에조차도 사람들이 말로 대단한 평판을 가진 사람들보다도 묵언을 중시했던 피타고라스의 제자들에 대해 더 탄복했다고 말한다(이소크라테스, 『부리시스』). 개인적인 훈련을 위한 묵언의 규칙 말고도 피타고라스의 가르침(akousmata)을 외부에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예사롭지 않은 묵언'의 규칙 또는 ‘보안(phylake)'의 규칙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이 “이성적 존재(to logistikon Zoion)의 한 부류는 신이고, 다른 부류는 인간이며, 또 다른 부류는 피타고라스와 같은 존재이다” 라는 것을 비밀로 했다고 한다.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이 이처 럼 피타고라스의 특정 가르침을 비밀로 했다면, 그의 모든 가르침이 보안의 대상이었다고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암블리코스에 따르면 히파소스(Hippasos)는 12개의 오각형으로 이루어진 구형에 대해 누설했기 때문에, 누군가(아마도 히파소스)는 12 각형이나 무리수에 대해 누설을 했기 때문에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하는데 (『피타고라스적 삶에 관하여』). 이런 것들은 지어낸 이야기들에 불과하다.

     

    다음으로 피타고라스의 모습을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닌 것처럼 그 리고 있는 초기 자료들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신 피타고라스주의나 신플라톤주의와 같이 피타고라스를 과장하고 신 격화하는 후기 전통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 게 적절할 듯하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의 출처가 역사적 피타고라스에 관한 한 상당한 권위를 인정받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단편들이므로, 그것들이 피타고라스와 무관한 것으로 보기 힘들다. 그러니까 피타고라스와 관련한 일화들 이 실제로 있었던 일들이라고 말하긴 힘들더라도, 그가 자연철학의 시대에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닌 자로 여겨졌었다는 건 분명하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피타고라스라고 하면 그의 이름이 붙은 '정리'가 곧바로 연상될 만큼 수학자로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안타깝게도 초기 자료에서 그 런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 본문에 수와 관련된 여러 글을 실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보고로 여겨지는 정도만 신빙성 있는 자료라 할 수 있다. ᅳ 그렇다면 어떻게 그 정리가 피타고라스와 연관 지어진 것일까? 그 근거 자료들은 모두 다 산술가인 아폴로도로스의 시구와 같은 구절들에서 유래한다.

     

    그 시구는 “피타고라스가 널리 알려진 그 도식(정리; gramma)을 발견했을 때, 그 일로 그는 그 유명한 황소 제사를 거행했다”는 짤막한 구절로 되어 있다('필롤라오스'). 이 구절에서 발견했다'는 표현은 증명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고, 실제로 피타고라스가 그걸 증명했음을 보여주는 초기 자료도 없다. 더욱이 수학의 증명방법이 개발된 것은 기원전 5세기 말이나 4세기 초에 이루어진다. 그러면 그 시구에서 발견했다는 것이 증명 없이 최초로 알아냈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는가? 그렇게 보기도 힘들다. 피타고라스 이전에 바빌로니아인들에게 그 정리가 증명되지는 않은 상태로 이미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기원전 2000년부터 3:4:5와 같은 피타고라스 정리의 수 조합들이 설형문자의 문서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타고라스는 특정한 기하학적 관계에 대한 발견자라거나 엄격한 증명을 하는 기하학자라고 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 성은 단지 그는 그 정리가 참이라는 것을 알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피타고라스는 그 정리를 알고 황소 제사를 거행했다는 말이 전해질만큼 기하학적인 관계를 몹시 중시했음이 분명하다.

     

    또한 피타고라스는 중심적 세 협화음(symphonia)과 네 정수(1. 2, 3, 4)의 비율 사이의 관계를 발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즉 옥타비 = 2 : 1, 제5음 = 3 : 2, 제4음 = 4 : 3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해 줄 신빙성 있는 초기 자료도 없고, 오히 려 피타고라스 시대에 이미 그 관계가 알려져 있던 것으로 지적된다.

     

    그러므로 피타고라스가 그 관계를 발견하거나 증명했다고 하기보다는 그 관계에 대해 알고, 그것의 중요성을 인식했다고 하는 게 적절할 것이다. 그는 음악을 수적인 측면에서 볼뿐 아니라, 지혜의 원천인 델포이의 신탁도 테트락튀스, 즉 네 정수(1, 2, 3, 4)와 연관시키고, 더 나아가 우주도 그 수들과 연관시키고 있을 만큼 그 관계를 대단히 중시했다. 그러면 피타고라스가 우주를 수들과 어떻게 연관시켰는지를 다음 절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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