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스가 최초의 희랍 철학자라는 명칭을 얻게 된 것은 주로 신화 적인 서술을 포기했기 때문인 반면, 아낙시만드로스는 세계를 포괄적이고도 자세하게 설명하려 시도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초의 인물이다. 연대기 작가 아폴로도로스에 따르면, 아 낙시만드로스는 기원전 547/6에 64세였다. 그는 탈레스가 일식을 예 언했던 해(기원전 585/4)에 25세였다. 그는 탈레스보다 젊었지만 아마도 많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에 대한 주요 자료 출처는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리고 테오프라스토스를 몇 차례 직접 인용하는 학설지 저자들이 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정보는 짧고 불완전하다. 따라서 우리가 접하게 되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전반적인 사상은 소요학파의 언어로 보고된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 자신의 것으로 인정받는 단편은 테오프라스토스의 짧은 인용을 통해 전해진(심플리키오스의 책에 법조되어 전해짐) 문구가 전부다. 신뢰성이 없는 수다.

    증언을 도외시하더라도 아낙시만드로스가 어떤 종류의 책을 분명히 썼다는 것은 테오프라스토스의 직접 인용에서, 그리고 디오 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보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낙시만드로스에게 아페이론은 우주 만물이 생겨나는 원천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아페이론은 탈레스의 물을 대신하는 원초적인 질료이다. 아페이론은 물이나 불, 그 리고 다른 철학자들이 근원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질료들과는 다르다. 그것은 영원하고 나이를 먹지 않으며, 운동 중에 있고, 다수의 하늘과 세계들이 이것으로부터 생겨나며 이것에 의해 둘러싸인다. 고 묘사되는 그런 것이다.

     

    아페이론에 대한 이런 묘사가 암시하는 '아페이론' 의 의미는 첫째 공간적 한계가 없는 무한히 큰 것이고, 둘째, 시간적 한계가 없는(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며, 셋째 다른 것과 구별되는 특정한 어떤 것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무규정적인 것이다. 아페이론은 물도 불도 아니며, 뜨겁지도 차갑지도,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으며, 축축하지도 건조하지도 밝지도 어둡지도 않다.

     

    세계 내의 모든 사물들과 모든 성질의 궁극적인 원천인 아페이론은 사물들 운데 어떤 것일 수 없으며, 사물들이 갖는 성질들 가운데 어떤 성질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아페이론은 더 이상 묘사하기 곤란하다. 아페이론은 신(神)적이고 사멸하지 않으며 운동 중에 있으므로, 탈레스의 물처럼 살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페이론은 세계를 생산할 수 있다. 아페이론을 신적이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사멸하지 않음과 늙지 않음은 전통적으로 신화의 신들에게 주어지는 성질이다.

    이것은 아낙시만드로스가 아페이론을 단순히 신적인 지위에 올려놓았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적인 것이 아페이론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신화의 신들은 시작(탄생)이 있으나 아페이론은 시작도 끝도 없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아페이론이 운동한다고만 말하고 있을 뿐 어떤 형태의 운동인지, 그리고 그 운동이 세계의 형성과 변화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이 점은 아낙시메네스도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고 일원론자들을 자주 질책한다. 어쨌든 아낙시만드로스가 아페이론이 운동한다고 생각한 것은 그렇지 않을 경우 어떤 변화도 일어날 수 없을 것이고, 그래서 우주는 결코 시작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의 형성은 아페이론에서 대립자들이 떨어져 나오는 데서 시작된다(이 대립자 개념은 아낙시만드로스에서 처음 등장하

    며, 이후 여러 철학자들, 즉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에 의해 사용된다), 우주 발생에서 주요 대립자들은 온(뜨거운 것)과 냉(차가운 것)이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이 대립자들의 상호작용과 균형을 가정했으며, 우주의 구성과 운행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이 대립자 개념은 이론적인 측면에서 탈레스의 문제점에 대응책이 된다. 탈레스에서 우리는 원초적 질료인 물에서 다른 사물들이 어떻게 나오는지에 대한 설명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물을 일차적 실체로 놓을 경우 불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가 의문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특정한 성질도 갖지 않는 아페이론에서 어떻게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 산출될 수 있을까? 아낙시만드로스는 온과 냉이 아페이론에서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온과 냉을 산출하는 어떤 것이 먼저 아페이론에서 "분리되어 나온다"고 말한다.

     

    온과 냉은 산출자'에서 동등한 힘을 가지고 동시에 산출되기 때문에 한쪽이 다른 쪽을 압도하지 못한다.  산출자에서 나온 온과 냉의 구체적인 모습은 '불꽃'과 '공기(짙은 안개)'이다. 불꽃은 껍질이 나무를 둘러싸듯이 공기를 바짝 둘러싸는 구형의 껍질이다. 이 구형의 불꽃이 부서져 둥근 것들로 나뉘고, 그것들이 해와 달, 그리고 별이 된다. 짙은 안개는 우리가 숨 쉬는 공기와 우리가 밟고 다니는 땅(지구)으로 분화된다. 축축한 땅은 태양에 의해서 말려지고, 남아 있는 습기들은 바다가 된다. 아페 이론은 분화 과정의 시초에만 나타나고 그 후에는 사물들이 주어진 세를 밟는다. 세계의 다양함은 올림포스 신들의 개입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에서 여럿으로의 분화와 한쪽에서 다른 쪽의 분리 과정에 기인한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우주는 단순한 대칭 구조를 보여준다.

    중앙에 높이가 폭(원의 지름)의 3분의 1 되는 원통 모양의 지구가 있다. 우리는 평평한 한쪽 표면(원통의 원) 위에 산다. 지구 둘레를 불의 바퀴들이 에워싸고 있고, 이 불의 바퀴는 안개로 감싸여 있어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바퀴마다 그것을 감싸고 있는 안개의 한 부분이 터져 있고 그곳으로부터 풀무의 주둥이에서 공기가 분출돼 듯이 불이 빠져 나온다. 그렇게 빠져나오는 불꽃이 우리가 보는 별들이다. 별들이 움직이는 것은 바퀴가 돌 때 풀무의 주둥이 (분출구)도 함께 돌기 때문이다. 별의 바퀴가 지구에서 가 장 가깝고 해의 바퀴가 가장 멀며, 달의 바퀴는 중간에 있다. 해의 터 진 부분(우리 눈에 보이는 해)은 지구와 크기가 같다. 각 바퀴들의 크기는 천체들이 지구에서 떨어진 거리를 나타낸다. 달의 바퀴 지름은 지구 지름의 18배이고 해의 그것은 지구의 27배이다.

     

    별들의 거리(바퀴들의 크기)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달과 해의 거리 설정 방식에 따르면 별들의 거리는 지구 지름의 9배로 추정할 수 있다. 별들은 제각기 지름이 같은 자신의 바퀴를 가지며, 평 행하게 (해와 달의 바퀴보다) 기울어져 있어서 서로 충돌하거나 해와 달을 가리지 않는다. 천체 현상에 대한 설명은 일식 현상과 달의 위상 변화에 대한 설명으로 완성된다. 이것들은 바퀴에 난 숨구 멍(분출구)이 공기에 의해 임시적으로 또는 주기적으로 폐쇄됨에 따라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생각은 탈레스에 비해 혁신적이다. 탈레스는 땅이 물로 바쳐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물은 무엇으로 떠받쳐지는지 의문이 생긴다. 또 다른 것이 그것을 떠받쳐야 한다면 같은 물음 이 계속된다. 지구가 모든 방향에서 같은 거리에 놓여 있기 때문에 머물러 있다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생각은 이 무한후퇴를 해소한다. 

     

    기상 현상에 대한 아낙시만드로스의 설명은 천체 현상에 대한 설명 방식과 유사하다. 기상현상의 발생도 '떨어져 나옴'에서 비롯된다. 공기(짙은 안개)의 가장 미세한 증기들은 바람이 되고, 좀 더 짙은 증기는 남아서 구름이 된다. 이 과정은 세계 형성의 시초에 바다와 바람이 생겨나는 과정과 유사하다. 천둥과 번개는 구름에 에워싸였다가 터져 나오는 바람에서 생긴다. 이 설명도 천체들(짙은 안개로 둘러 싸인 바퀴의 일부에서 터져 나오는 불)에 대한 설명을 상기시킨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바람이 해와 달의 운동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기상 현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설명하는데, 이처럼 공기의 산물인 바람을 강조하는 것은 아낙시메네스와의 관련성을 엿보게 한다.

     

    인간을 포함해서 생물들의 기원에 대한 아낙시만드로스의 설명에서도 우주와 기상 현상에 대한 설명과의 유사성을 읽을 수 있다. 더한 것에서 더 복잡한 것이 생기며, 생겨나는 것은 어떤 것 속에 싸여 있다가 밖으로 터져 나와서 존재하는 방식이다. 최초의 생물은 가시투성이 껍질로 이루어졌으며, 사람도 물고기 같은 가시투성이 껍질로 싸여 있다가 나중에 껍질을 터뜨리고 나왔던 사람도 물고기 같은 생물 속에 갇혀 있다가 성장한 다음 몸을 터뜨리고 나온다고 말한다. 사람이 물고기 같은 생물 속에서 길러졌다는 발상은 최초의 생물이 축축한 것에서 생겨났다는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이며, 유아기의 무기력함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는 착상의 기발함을 보여준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우주론은 소박하지만 기하학적 구조와 수학적 비례관계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과학적인 사고의 진전을 보여준다. 그리고 기상현상과 생물의 발생 및 전개과정의 유사한 설명방식도 과학적 사고의 단초를 보여준다. 이런 경향은 아낙시만드로스의 말을 담은 직접 인용에서도 표현된다. 이 단편은 대립자들의 상호변화 과정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상호변화란 A가 소멸될 때 A는 다른 어떤 B(A가 생겨날 때, 소멸하는 것과 같은 종류 의 것)로 바뀐다는 것과 2 A, B 각각은 정해진 길이의 시간을 갖는 다는 것이다. 덧붙여서 생성과 소멸은 A가 B에 저지르는 불의의 행 위이며 A는 그에 대해서 보상을 하도록 강요받는다. 이 A, B를 상호 대립하는 원소적 힘으로 이해하는 것은 함축하는 바가 크다.

     

    대립하는 원소적 힘들의 변환은 계절의 순환과 연관 지어 이해할 수 있다. 여름에는 더위가 우세하고, 겨울에는 추위가 우세하며 봄, 가을에는 더위와 추위가 균형을 이룬다. 여름이 오면 더위가 추위를 몰아냄으로써 잘못을 저지르고 추위의 영역 일부를 차지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더위는 잘못의 대가를 지불하고 추위는 그에 따르는 보상을 받고 다시 균형을 유지한다. 겨울이 되면 추위가 더위에게 잘못을 저지른다. 그러면 다시 보상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처음에 하나가 지배하고 그다음에 그와 대립하는 것이 지배하는 상태들 사이에 규칙적 이 교대의 끝없는 순환이 일어난다.

     

    습함 건조함, 밝음 - 어두움, 옅고 짙음, 단일 - 복합 같은 다른 대립 쌍들을 가지고도 마찬가지로 세계의 여러 가지 특징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대립하는 원소들의 상호작용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자연에서 변화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설명하는 데 잘 들어맞으며, 그래서 필연에 따라서 불가피하게 그리고 균일하게 비인격적으로 작용하는 자연법칙에 대한 이해의 실마리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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