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암블리코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보고를 인용한 것의 로 여겨지며, 피타고라스의 우주론을 이해하는데 더없이 중요한 자료이다. 피타고라스는 지혜의 원천인 델포이의 신탁을 테트락튀스, 즉 네 정수(1, 2, 3, 4)와 연관시키고, 이 테트락튀스를 다시 "세이렌들(Seirenes)이 이루어내는 화음(조화; harmonia)과 연관시키고 있다.

     

    이 모호한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이렌들 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이렌들은, 『오뒷세이아』 (12. 39-46)에서는 섬에 살면서 노래로 선원들을 홀려서 죽이는 요정들로 묘사된다. 하지만 알크만(Allkman)은 세이렌을 무사(Mousa)와 동일시하기도 하고, 플라톤은 여덟 세이렌이 천구들의 화음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국가』 6175). 여기서 다시 피타고라스의 문제의 구절로 돌아가 보자. 세이렌들이 이루어내는 화음(조화)'이라는 그의 표현은 바로 플라톤이 말하는 천구들의 화음'의 싹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만 초기 자료에 따르면 피타고라스에게는 천구 개념이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피타고라스의 경우에는 천구의 화음이란 표현보다는 우주의 화음이라는 표현이 무난할 것이다. 결국 피타고라스는 테트락튀스와 우주의 화음을 연관시킨 것이며, 이는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곧 우주는 음악적 협화음들의 경우처럼 정수 1, 2, 3, 4로 이루어지는 비율들에 의해서 표현될 수 있는 화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피타고라스는 우주를 수적인 구조를 지닌 것으로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가장 아름다운 것은 조화(화음)이다'는 것이 피타고라스의 생각이니, 피타고라스의 우주론은 이렇게 재구성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주는 수적인 비율로 표현할 수 있는 조화를 지닌 것으로서 아름다운 것이다. 달리 말해서 우주는 아름다운 것이고, 이는 그것이 조화를 가졌기 때문이며, 이 조화는 수적인 비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피 타고라스의 생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수적 비율에 기초한 피타고라스의 우주론은 합리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피타고라스는 이오니아 철학자들과 같이 신화적인 사고를 벗어나 자연 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했던 철학자인 듯이 보인다. 하지만 피타고라스의 우주론은 비합리적인 면도 갖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피타고라스는 바다는 크로노스의 눈물이고, 곰자리는 레아의 손이며, 플레이데스는 무사(Mousa)들의 뤼라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진은 죽은 자들의 모임일 따름이고, 천둥은 타르타로스에 있는 자들이 겁먹도록 그들을 위협하기 위한 것이다'라고도 말하는 등 여전히 신화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혼의 불사설과 관 련한 피타고라스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를테면 그는 태양과 달은 축복받은 사람들의 섬이다' , 행 성들은 페르세포네의 개들이다'고도 말하는데, 이런 말들 은 선하게 살면 태양과 달로 가서 축복받은 삶을 살고, 악하게 살면 행성들로 가서 응징을 당한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는 자연 설명을 통해 사람들의 도덕적 의식을 고양시키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 피타고라스가 우주의 아름다움을 조화와 수적 비율로 설명한 것도 우주 자체에 대한 자연철학적 설명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삶의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피타고라스는 인간의 삶의 방식에 더없이 관심을 가진 철학자였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와 관련해서는 자연철학자들이 상반된 평가를 내리고 있어서 흥미롭다. 헤라클레이토스는 “피타고라스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탐구를 했고, 이 저작들을 선별해 내어 자신의 지혜, 박식, 술책 (kakotechnē)을 만들었다.”라고 말함으로써 그의 지자로서 의 지위를 의심한다.

     

    그는 피타고라스가 박식하긴 하지만 “박식이 분 별력을 갖게끔 가르치지는 못한다"라고 말할 뿐 아니라, 또한 "피타고라스는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들의 원조이다"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반면에 엠페도클레스는 피타고라스와 관련해 “예사롭지 않은 일을 아는 어떤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생각들로 가장 부유한 자이며, 특히 온갖 지혜로운 일에 정통한 자이다"라 고 증언한다. 좋은 평가를 담고 있는 아니든, 그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이전 시기의 증언들이 비교적 폭넓게 있는 편이다. 이는 곧 그가 상당한 유명인사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피타고라스에 대해서 상반된 평가가 존재하듯이, 그의 사상에는 상반된 두 면, 즉 합리적인 면과 비합리적인 면이 공존한다. 그는 수학에 기초한 합리적인 측면을 보이는가 하면, 신화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측면을 보이기도 한다.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닌 자로서 그의 모습도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넘어서 있다. 이런 두 측면이 피타고라스에게는 병존하고 있다. 이로 인해 피타고라스주의는 피타고라스 사후 기원전 5세기 중엽쯤에 두 부류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 한 부류는 '듣고 따르는 사람들(akousmatikoi)'이고, 다른 한 부류는 '학문하는 사람들(mathématikoi)'이다. 

     

    이 두 부류의 입장 차이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피타고라스주의자들에 관하여』에서 이암블리코스가 인용한 것으로 여겨지는 글에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포르퓌리오스의 글에는 역사적 피타고라스가 이미 두 부류를 구분하여 가르친 것처럼 언급되어 있는데, 실제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두 부류의 성격을 잘 구분해 주고 있다. 두 부류의 대립은 기원전 4세기에 사실상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피타고라스 사후 피타고라스주의의 전통에서 가장 뛰어난 철학자로는 기원전 5세기에 전성기를 보낸 필롤라오스를 들 수 있다. 그는 피타고라스의 두 부류 중 학문하는 사람 쪽이었을 것이다. 피타고라스와 필롤라오스 사후에도 피타고라스주의의 전통은 플라톤 아카데미 계승자들을 거쳐 신피타고라스주의, 그리고 신플라톤주의로까지 이어졌으니, 적어도 8세기 동안이나 피타고라스주의가 존속했던 셈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아카데미 계승자들 이래로 피타고라스를 진리의 화신처럼 추어올려 역사적 피타고라스의 모습을 왜곡해 놓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철학자로서의 피타고라스의 공헌은 우선 수학적 우주론의 싹을 보여주었다는 걸 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불분명한 상태로 제시되었고, 더욱이 신화적인 요소가 덧붙어 있어서 그 의미가 크게 퇴색되고 말았다. 하긴 수학적 우주론보다는 오히려 피타고라스에게 일차적인 관심사는 종교적·도덕적인 문제였다.

     

    혼의 불사설과 전이설을 바탕으로 한 그의 철학은 응당 삶의 방식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우주에 대한 관심도 결국은 그의 삶의 방식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피타고라스는 다른 자연철학자들처럼 형이상학자라기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nos bioteon)' 하는 윤리적 문제에 답을 구하고 실천하는 도덕적 현자라고 평가하는 게 적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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