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세노파네스는 이오니아의 도시국가 콜로폰 출신이다. 남겨진 그의 시에 담긴 내용으로 추정해 보면, 그는 이오니아가 페르시아의 왕 퀴로스에 의해 멸망한 기원전 546/5년쯤에 희랍 본토로 망명해 그 후 희랍 전역을 전전하며 일생을 보낸 듯하다. 

     

    역시 그의 시의 내용으로 미루어 망명할 당시 그의 나이는 25세쯤으로 보이고 그 후 70년 가까이를 더 산 듯하니 그는 90을 넘겨 산 듯하다. 그가 기원전 620-617 년(마흔 번째 올림피아기)경에 태어났다는 아폴로도로스의 전언도 있지만, 대략 기원전 570-560년경에 태어났으리라는 것이 오늘날에는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그의 사망년도는 확실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에 따르면, 그는 이오니아의 포카이아가 페르시아에 공략당한 뒤 그 유민들이 남부 이탈리아에 엘레아라는 식민도시를 건설할 쯤에 그곳에 가서 가르친 적도 있다고 한다. 이것이 그가 엘레아 학파의 설립자라는 추정을 가능케 하는 한 가지 근거가 되고 있다. 또한 플라톤은 『소피스트』 242d에서 “우리 지역의 엘레아 부족은 크세노파네스나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는데, 모든 것이라 불리는 것은 하나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신화로써 설명하네”라고 말해서 고대의 문헌 중에서는 최초로 엘레아학파의 성립과 크세노파네스를 연결 지었다.

     

     이러한 견해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다시 나타나며 그 이후로 고대의 저술가들의 책에 반복해서 나타난다. 따라서 크세노파네스가 엘레아 학파의 창시자라는 견해는 고대에는 정설이었다.

     

     그러나 버넷은 플라톤의 증언이 진지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하면서 크세노파네스를 엘레아 학파의 설립자로 보는 데 반대 의견을 제시하였다(Burnet, J.; 1930, pp. 112-115). 비록 버넷이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의 과학성을 강조하려는 입장에서 사고의 정합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무리하게 크네노파네스를 철학자의 반열에서 빼고자 한 점은 있지만, 버넷 이후로 크세노파네스의 사상을 엘레아 학파의 전통에 당연히 연결하는 관행에는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파르메니데스, 제논, 멜리소스가 대변하는 엘레아학파의 생각에 직접적으로 연결 지을 만한 내용이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간접적으로는 엘레아학파의 생각의 전조를 미리 보이는 대목이 크세노파네스의 토막글에 많이 발견되는 것은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크세노파네스의 토막글이 파르메니데스의 생각에 간접적 으로나마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추측은 믿을 만한 구석이 많다. 특히밀레토스 학파에서는 사용하지 않던 운율을 사용해서 자신의 철학적 사고를 펼친 파르메니데스에게는 역시 시를 사용해 자신의 사상을 펼친 크세노파네스의 영향력이 전해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높다.

     

     주지하다시피 크세노파네스는 희랍의 신인동형론적 신관을 비판하고 일신론적 신관을 주장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와 같은 시인들과 일반인들이 신들에게 인간들만이 갖고 있는 품성을 부여한다고 비판하고 신은 인간과 다름을 역설하였다. 

     

    신은 인간과 형체와 생각이 조금도 비슷하지 않은데, 인간들은 자신들의 생각만으로 신들을 자기식으로 꾸며 낸다고 크세노파네스는 지적한다. 신들이 태어난다거나 사람과 같은 형체를 갖는다거나 신들이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는 발상은 바로 이런 생각에서 비롯되었다고 크세노파네스는 본다.

     

     이런 전통의 신관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크세노파네스는 적극적으로 신이 하나이며 움직이지 않고, 마음으로 만물을 움직인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렇게 해서 그는 전통의 신관을 극복하고 신이 갖는 정신의 측면을 강조하여 신의 단일함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신관은 직접적으로는 아니더라도 파르메니데스의 '있는 것 (to eon)'을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신에 대한 그의 생각과 대비해서 바라볼 수 있는 생각은 자연에 대한 크세노파네스의 생각이다. 크세노파네스는 자연철학이 출발한 밀레토스에서 멀지 않은 콜로폰 출신으로서 이오니아 철학의 전통에 익숙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크세노파네스가 우리를 비롯한 생성하고 자라는 모든 것은 흙과 물에서 생겨났다고 보는 것은 만물의 기원 (arche)을 찾으려 했던 이오니아 자연철학의 전통의 연장선상에 서있는 것이다. 

     

    그 밖에 그는 자연철학자들이 그랬듯이 땅의 모양과 위치에 대한 논쟁에 가담하며, 바다. 바람 비 구름 태양 같은 자연 현상을 논의하면서 자연철학자의 풍모를 확연히 드러낸다. 이런 자연현상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그는 사람들이 자연 현상을 신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람들이 자연 현상을 신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무지개는 사실은 구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렇게 그는 신화적 관점을 탈피해서 자연 현상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신을 자연과 형체에 얽매여 파악하는 전통의 신관을 넘어서 신을 정신으로 보고 있다.

     

     신에 대한 크세노파네스의 생각의 한 편에는 신에 대한 경외감과 경건함이 자리잡고 있고 다른 한편에는 인간의 앎의 능력에 대한 회의가 자리잡고 있다. 인간은 한 번에 모든 것을 알 수도 없고 사람들이 안다고 믿는 것은 참이라기보다는 그것과 유사한 것인 의견(dokos)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지만 크세노파네스의 앎이 어쩔 수 없이 의견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니고, 시간을 두고  탐구하다 보면 더 나은 것을 발견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신에 대한 크세노파네스의  크세노파네스의 생각은 실천적으로는 신에 대한 인간의 경건함으로 드러난다. 그는 술자리의 태도에 대하여 읊은 시에서 신에 대한 경건한 자세를 사람이 갖추어야 할 훌륭한 태도 중의 하나로 꼽는다. 또한 그는 사치스러운 삶을 경계하고 올림피아 경기에서 우승한 선수들을 영웅시하는 세태를 비판하고 육신의 힘보다는 지혜를 국가를 위한 덕목으로 받들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신들을 의인화하는 서사시인들을 비판하는 것으로, 『국가』에서 플라톤이 피력한 시인 비판론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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