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고대 철학 및 과학 사상을 서술하는 역사책 치고 눈에 익은 광고 문구처럼 굳어진 뮈토스적 사고에서 로고스적 사고로(Vom Mythos zum Logos)' 라는 표어의 공식화된 설명으로부터 철학과 과학의 시원(始原)에 대한 서술을 시작하지 않는 책이 없다. 이 낯익은 구호를 대중화시킨 사람은 독일의 고전 철학자인 빌헬름 네슬레 (Wilhelm Nestle)0147.

     

    그는 『뮈토스에서 로고스로」에서 희랍에서의 합리화(이성화)과정을 그려내려고 하였다. 그는 서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뮈토스와 로고스라는 두 말로 우리는 인간의 정신적 삶의 영역을 움직이는 두 축으로 삼는다. 신화적 표상과 논리적 사고는 상반된 것이다. 전자는 상상적이고, 비자발적이며, 무의식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지고 또 형성된다. 반면에 후자는 개념적이고 의도적인데, 의식에 의하여 분석, 종합된다.”

     

    그는 호메로스로부터 소크라테스에 이르기까지의 이성적 발전을 더듬어 찾아내고 있다. 모스트는 역설적으로 그의 논문의 제목을 '로 고스에서 뮈토스로' 라고 붙였다. 그는 언제의 인간의 사고를 '뮈토스' 라고 말해야 하느냐 하는 원칙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철학사를 통해서 볼 때 늘 로고스적인 측면과 뮈토스적인 측면이 대립되어 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이제는 '뮈토스에서 로고스' 를 바라볼 게 아니라, '로고스를 통해서 뮈토스' 를 찾아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원리와 까닭에 대한 탐구의 출발을 어느 정도는신화의 전통 가운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을 수긍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철학사의 출발을 이오니아의 밀레토스 출신인 탈레스에게 돌리고 있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사의 시작을 탈레스에게 돌릴 수밖에 없는 적절한 근거를 주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탈레스에게 돌리고 있는 그 설명들이 철학사의 출발 시점을 마련해 주고 있으며, 그래서 철학사가들은 이오니아에서 철학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대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규정은 초기 사상가들 의 사유가 신화나 종교적인 방식이 아니라, 철학적이라고 부를 만하다는 평가에서 비롯된다. 철학적 기준에 부응하는 사고를 그들이 처음으로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 기준은 사고방식의 합리성에 있다. 철학적 사고, 사상에 대한 음미와 비판의 전제는 언제나 합리성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철학을 비롯한 학문(epistem)의 역사는 결국 합리성의 역사이며, 합리성(혹은 이성)의 의미 규정과 그 탐구 대상에 의해서 철학의 차별화가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로이드는 그의 저서 『그리스 과학 시상사』에서 중동 지방의 의학, 수학, 천문학 분야에서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희랍의 탈레스가 최초의 철학자, 과학자였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한다. 그는 밀레토스 철학자들의 사고를 이전 사상가들의 그것과 구별해 주는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지적했는데, 하나는 '자연의 발견' 이고 다른 하나는 이성적인 비판과 논쟁의 실천' 이라고 말하고 있다.

    근자에 들어서 철학의 연원을 탈레스 이전의 종교적 · 신화적 삶의 표현 속에서 희랍철학의 맹아를 찾는 일이 시도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 몇몇 고전 연구자들이 탈레스 이전의 문학적 · 종교적 사고로부터 철학적 사고의 시원을 발견하려 시도했고 특히 호메로스나 헤시오도스 같은 시인들에게서 철학적 탐구의 맹아를 찾고자 했다.

     

    예컨대 헤시오도스를 철학의 출발로 보는 기곤은 '시로부터 철학이 생겨났다'는 것은 놀라운 것이 아님을 지적하면서, 우리가 철학자라고 부를 수 있는 최초의 사람들은 시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덧붙여 헤시오도스가 호메로스에 비해 아주 새로운 것을 추구했는데, 그것은 신의 계보의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하여 헤시오도스가 아리스토텔레스와 테오프라스토스 이래로 철학의 시조로 받아들여지는 밀레토스의 탈레스의 기술보다도 희랍철학의 시원에 대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하고 깊은 의미를 주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기곤이 이해하는 헤시오도스의 철학함의 계기는 1 참과 가상적인 것 간의 구분과 2 신들의 계보를 추적함으로써 세 계의 기원'의 근원을 탐구하려는 물음, 그리고 3 이 세계를 구성하 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대상을 포괄하는 '전체' 에 대한 생각으로 요약된다. 이로써 형식적이고 존재론적인 원리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기곤은 이해한다. 스넬도 같은 맥락에서 헤시오도스가 이 세계의 기원을 아르케로 포착하려 했던 철학의 선구자임을 지적한다.

     

    철학의 발생 이전, 이후의 사상 및 정신의 발전을 기술하는 훌륭한 고전적 철학 역사서들을 우리 주위에서 찾아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철학의 기원 그 자체에 대해서는 서로 일치된 견해를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여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개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철학적 사고의 기원을 설명하는 상호 대립되는 관점 과 방법은 차치(且置)하고서라도, 뮈토스적 사고부터 로고스적 사고로' 라는 상투적 수식 어구 자체가 문제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뮈토스적 사고' 라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과연 신화적 사고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아니, '신화' 에 내포된 사고방식이란 것이 과연 우리에게 이해 가능한 것인가 하는 원론적인 문제도 대두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관한 대립되는 견해가 존재한다는 것은 철학적 사고의 연원(아르케)'에 관한 문제 자체가 어떤 모호성을 지니는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 나아가 그 문제 자체는 어떤 하나의 입장과 관점으로 해결될 성격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신화적 사고의 본질이 무엇 인가 하는 문제는 신화 자체에 관련된 여러 개별 학문적인 논의를 전제해야만 한다.

    이에 관련되는 학문의 분야는 종교학, 신화학, 역사 학, 문화 인류학을 비롯하여 여러 분야를 포함할 수 있다. 그 밖에도신화 자체의 성격 규정상 인문학은 물론이고 자연과학 전반에 걸쳐있는 문제점을 노출시켜 매우 광범위한 토대 위에서 논의되어야 할 성격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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