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스는 6세기 초반에 활동하였으며, 기원전 585년의 일식을 예 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희랍의 철학과 과학적 전통의 창시자로 일컬어진다. 탈레스가 자신의 견해를 글로 썼는지는 분 명하지 않으며 고대에도 알려져 있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그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그가 항해용 천문 안내서를 썼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리스토 텔 레스는 탈레스의 견해를 서술하면서 그의 저술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는다.
탈레스의 삶과 행적을 알려주는 정보원으로서 가장 오래 된 저자는 헤로도토스이다. 탈레스의 행적과 관련된 일화들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곤란하지만 대체로 그가 다방면에서 능력이 뛰어났음 을 말해준다. 실로 탈레스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가운데 7 현인에 속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헤로도토스는 탈레스가 할뤼스 강의 흐름을 바꾸었다는 이야기를 믿지는 않았지만, 탈레스가 그 리 전도의 일을 했으리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탈레스가 소아시아의 이오니아 도시들에게 정치적인 연합을 형성해서 페르시아의 팽창에 효과적으로 저항하도록 조언했다는 이야기는 정치 지도자로서의 식견을 엿보게 한다. 그런가 하면 사실성은 희박하지만 전형적인 철학자로서 일면을 보여주는 일 화들도 있는데, 우물에 빠진 사색가의 이야기는 쓸모없다는 비난으로부터 철학을 옹호하는 이야기는 이런 주제의 일화 들 중 가장 오래된 형태이다. 이 허구적인 두 일화는 탈레스를 천문학자로 묘사한다.
천문학에서 탈레스의 행적으로 꼽히는 가장 유명한 것은 일식의 예언이다. 탈레스의 일식 예언은 물론 오늘날과 같은 과학적 지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오늘날의 일식 예측은 날짜뿐 아 니라 일식의 경로도 명시하며, 경로를 따라 다른 장소에서의 부분 일 식과 전체 일식 시간을 명시한다. 오늘날의 예측들은 매우 정확한 지식을 필요로 하며, 그런 지식은 탈레스 시대 한참 후에도 가능하지않았다. 달과 지구의 타원 궤도는 17세기에 비로소 확정되었으며, 탈레스의 직계 후계자들(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은 아직 지구로 구형으로도 인식하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탈레스가 일식고했다는 헤로도토스의 전거가 사실이라면, 그의 예언은 오랜 기간에 걸친 경험적 관찰에 의지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헤로도토스의 전거에서 보듯이 탈레스가 예언한 것은 일식이 일어나는 해였고, 날짜나 시간, 그리고 일식을 관찰할 수 있는 특정한 장소는 아니었다. 이런 대략적인 일식 예언은 바빌로니아의 방법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탈레스는 바빌로니아의 기록들에 의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빌로니아인들은 점성학과 종교적인 목적 때문에 일식이나 지점의 주기와 같은 천체 현상들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기원전 8세기 중반부터 자세한 기록을 누적해 왔다. 당시 밀레토스의 국제적인 교섭관계로 볼 때, 탈레스는 이 바빌로니아의 기초 자료들을 접했 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천문학과 관련된 탈레스의 다른 행적들(작 은 곰자리의 관찰, 지점과 그것의 변화를 측정하는 일) 역시 바빌로 니아에 의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거들은 탈레스를 수학의 영역에서도 여러 발견들의 장본인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그의 발견들은 그의 천문학이 그렇듯이 그 기원이 탈레스 자신에게 있지 않다. 전승에 따르면 탈레스는 기하학을 이집 트에서 배워왔다. 이집트의 기하학이 땅을 측정하고 건 물을 배치하기 위한 실용적인 지식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면, 희랍의 기하학은 유클리드의 원리들』에서 보듯이 일반적인 정의와 정리를 취급하며 측정이나 계산에 몰두하지 않는다. 에우데모스 이래로 고대 수학 사가들은 희랍의 기하학이 출발부터 이런 특징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수학자들은 지속적으로 기존의 지식을 조직화하여 증명의 포괄적인 체계로 만들어갔는데, 그 과정에서 탈레스가 희스하의 토대를 닦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생각하고 특정한 정리, 그의 것으로 돌리려 했다. 그러나 최근의 수학 사가들은 이런 점을 부정한다. 증명의 원리가 아테네 여신이 제우스의 머리에서 나온 것처럼 기하학자의 머리에서 완성된 형태로 불쑥 나왔을 가능 성은 적으며, 그보다는 오랜 기간에 걸쳐, 아마도 철학에서 증명의 사용에 영향을 받아 발전했을 것으로 본다(증명의 사용은 파르메니 데스에서 비로소 등장한다).
따라서 프로클로스가 에우데모스를 쫓아서 탈레스의 공로로 돌리는 세 가지 정리들은 그 방면에서 탈레스의 행적과 관련이 있는 실제 문제들을 이론적으로 깔끔하게 해결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탈레스는 기하학자로서 그런 원리들을 언급하지 않고서도 초보적인 측정 기구를 사용해서 문제들을 해결하여 동시대인들의 명성을 얻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탈레스의 가까운 후계자들이 수학 이론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 았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도 이런 추측의 배경이 될 법하다. 탈레스의 우주론에 대한 정보는 전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의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탈레스의 견해로 돌리는 명제는 두 가지.
하나는 지구가 물 위에 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물은 만물의 근원(arch)이라는 명제이다. 지구가 물 위에 떠 있다는 생각은 근동의 신화적 우주론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이집트에서 도입되었을 것이라는 심플리키오스의 언급도 있거니와, 당시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여러 지역에 그런 관념이 폭넓게 퍼져 있었음을 알려주는 자료들은 풍부하다. 하지만 탈레스의 그것을 신화적 세계관의 단순한 연장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다른 전거에 따르면, 탈레스는 지진의 원인을 지하에 있는 물의 운동으로 설명한다.
땅이 물 위에 떠 있음을 전제할 때 이해 가능한 이러한 설명은 탈레스의 착상이 단순한 신화적 사고의 답습이 아니라,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발상으로 이해할 여지를 준다.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는 생각과 관련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의 물을 자신의 4가지 원인설에 맞추어 질료인으로 해석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선배 철학자들의 사상을 이처럼 자신의 고정된 분석틀로 재단한 것은 그들 사이의 유사성을 드러내는 데 유용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혼란의 원천이기도 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해석에 따르면,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는 명제는 모든 사물은 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모든 사물은 물이다” 가 된다. 그래서 탈레스의 주요 문제는 “모든 사물들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이며, 우리가 아는 한 탈레스는 최초로 이런 물음을 제기한 사람으로 이해된다.
물질의 근본 형태와 다른 물체들이 그것들로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관심을 갖는 이런 물음은 탈레스 이후의 자연철학자들이 대답하고자 했고, 또 오늘날의 물리학 자들이 해결하고자 하는 물음의 성격과 다르지 않다. 탈레스가 물을 이처럼 사물들의 구성요소로 생각했을 가능성을 배제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우리에게 너무 분명해 보일 뿐 아니라 후계자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종류의 문제에 대한 탈레스의 침묵이 의심스럽다. “만약 세상 모든 것이 물로 구성되어 있다면, 어떻게 해서 세상에는 다른 종이 사물들이, 더구나 불과 물처럼 상극으로 보이는 그런 것들이 있을 수 있는가?”
질료인으로서의 물 개념은 영속하는 실체 개념에 맞춘 아리스토텔레스 나름의 해석일 뿐이고, 탈레스의 실제 생각은 세계가 생겨난 기원으로서의 물이었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은 땅이 물 위에 떠 있다는 착상과 잘 연결될 뿐 아니라, 탈레스가 영향을 받았을 근동의 신화들 가운데 함축되어 있으며, 오케아노스(강)를 모든 사물의 원천으로 지목하는 호메로스의 언급과도 통한다. 이 기원으로서의 물 관념은 세 계의 원시 상태는 어떤 것이며 세계의 현재 상태가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주목한다. 탈레스는 세계가 태초에 무한하게 펼쳐진 물에서 나왔으며, 세계는 여전히 그 물 위에 떠 있고, 그 물은 여전히 특정한 자연 현상(예컨대 지진)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태초의 물과 연결되겠지만, 사물들이 물로 이루어졌다는 믿음은 갖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탈레스의 우주론은 신 화적 우주론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셈이다.
탈레스의 견해를 조명해 줄 확실한 증거 자료가 더 이상 없는 상황에서 어느 방향의 해석이든 추정의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어쩌면 탈레스에게는 기원으로서의 물 관념과 구성요소로서의 물 관념이애매하게 섞여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물을 사물이 구성요소로 보는 이유였을 것으로 추측하며 제시하는 생리학적 시에 들은(모든 생물들이 취하는 자양분이 축축하다는 것, 정액이 물기를 포함한다는 것) 탈레스에게 충분히 떠올랐음직한 이유들이다. 이들 사례는 신화적 우주론의 영향과 함께 탈레스에게 물이 우 주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분화된 세계의 본질에도 포함된다는 생각을 동시에 갖게 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노선은 가까운 후계자인 아낙시메네스로 이어져 확장되고 다듬어졌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낙시메네스는 모든 사물이 공기에서 나왔고 공기로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그럴 수 있는가에 대 해서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혼(psyche)과 신, 그리고 살아 있는 세계에 대 해서 탈레스의 생각을 엿보게 하는 간접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탈레스는 혼이 운동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석이 쇠 붙이를 움직이게 하기 때문에 혼을 가졌다고 믿었다. 혼을 생명의 원천으로 여기는 것은 희랍적 사유의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혼의 있고 없음에 따라 살아 있음과 죽음이 나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들과 동물들이 혼을 갖는다고 말했으며, 나아가 운동이 생명의 특성이라고 주장했다. 이 운동은 성장과 질적인 변화를 포 함하며 그래서 식물도 소유하는 넓은 의미의 운동이다.
그러나 자석이나 호박은 동·식물처럼 살아 있는 것으로 보이지아니라 스스로 움직이거나 변화할 수도 없다. 그래서 자석과중반이 혼을 지녔다는 탈레스의 생각이 철학 이전의 정령론(anim)에 따른 신화적 표상을 보충하는 진술인지, 아니면 확장된 혼 개념 (운동과 변화의 힘)과 더불어 제한된 의미의 물활론(hylozoism)을 천명하는 진술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리고 탈레스가 자석과 호박의 관찰 사례를 일반화해서 모든 사물은 생명을 가졌다는 생각에까지 나아갔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추측에 따른 보고 이기는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가 모든 것이 신으로 충만하다고 믿었다는 말을 하면서, 이 믿음을 우주에 혼이 스며 있다는 믿음과 결부시킨다.
직접적인 증거는 없더라도 혼과 신의 연결 가능성을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으며, 비록 탈레스에게 신화적 전례들의 영향이 간접적으로 강하게 작용했을지라도 그의 우주 론에서 철학적 사고의 가능성들을 배제할 분명한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탈레스에게 전체로서의 세계는 어떤 의미에서 생명력으로 충만한 것이었으며, 그러한 생명력은 광범위함과 영속성으로 말미암아 신적이라고 불리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 같다.
이 생명력과 (세계의 기원이자 아마도 본질적 구성요소로 보았을) 물의 관계에 대해서 어성을 추측해 볼 수는 있겠으나, 탈레스가 그것을 물과 결부시켰는지에 대해서 말해주는 전거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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